신간 소개(사찰에 깃든 문학) 불교신문
부산고구려$ 인생은 태어남의 출발에서 마지막 종점까지 나그네 길의 연속이다. 언제나 우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내가 지구별에 와서 사는 동안 호기심을 갖고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보며 놀라운 창조의 세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지나온 여행지를 추억하며 간단한 기행문(요약)을 남기고자 한다. 여행 가방을 들고 언제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1* 아프리카 - 남아공. 짐바브웨. 보츠와나. 케냐 들녘에 섬처럼 자리한 마사이족의 한 마을에 찾아 갔다.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열서너 명이 고유의 요란한 복장에 창과 방패 등을 들고 외부인을 환영하는 의식으로 한바탕 춤을 춘다. 그런 후에 그들이 사는 움막촌으로 안내했다. 대문이릴 것도 없이 싸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시골 외양간에 들어온 듯 역겨운 쇠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이 온통 쇠똥으로 덮여 신발에 덕지덕지 달라 붙는다. 그들의 사는 모습은 사바나의 동물과 다를 바없이 원시인 같은 삶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차츰 오염이 돼 가는 걸 느낀다. (케냐 )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인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는 1855년에 영국 선교사, 리빙스턴이 처음 발견하여 당시의 본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최고의 낙차가 무려 110M까지 이르는 수십갈래의 물줄기가 아찔한 절벽 밑으로 수천수만의 알갱이로 바스러지고 흐트러져 하얀 연기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따라서 산책로를 걸어 군데군데 폭포가 연출하는 장관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이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짐바브웨) 아프리카의 땅끝에 이르렀다. 희망봉. 인도양을 장기간 항해하다가 유럽 쪽으로 접어드는 이곳만 지나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선원들이 갖게 돼 붙여진 이름이다. 왼쪽엔 인도양, 오른쪽엔 대서양이 분기점을 이룬다. 거칠 것 없이 해변에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 두 바다가 연주하는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파도의 흰 거품을 따라 날아가는 검은 빛 사자 새들의 날개 짓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저만치 언덕빼기에 자리한 케이프 포인트에 있는 등대 위에 낮달이 빙그레 떠오른다. 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리우는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대서양으로 기우는 해는 그리운 노을로 남고 항구의 불빛이 어느새 지상의 별로 속삭인다. 예수님의 열두사도를 닮았다는 테이블 마운틴도 저녁 어스름에 눈을 감는다. (남아연방) 2 * 남미 대륙 -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 오는 우르릉...천둥이 치는듯한 소리와 우렁찬 물소리를 듣게 되고 폭포 입구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이과수의 모습은 밀림의 숲을 배경으로 장엄하기 그지 없고 꼭 선계에 들어선 착각마저 일었다. 아, 천지개벽의 그 날처럼 쏟아지는 물 소리. 만약 물의 나라가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까. 밀림의 사자들이 포효하듯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쏟아내는 다갈색 폭포수의 행진이었다. 아르헨티나 측에서 바라 본 이과수 폭포는 ‘악마의 목구멍’이란 별명답게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물보라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가운데 까만 점 같은 제비떼들이 곡예하듯 무서운 폭포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날고 있다. 세계 최대의 폭포수를 바라보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대로 물멍 하자니 나도 어느새 온몸이 물방울로 변해 저 폭포수 속으로 빨려들 것처럼 혼미해 진다. (브라질 이과수 폭포)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나 교외로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드넓은 초원에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곳을 지나 라플라타 강에 이르렀다. 수평선이 아스라하게 보이는 바다 같은 강물이 황톳빛으로 출렁거린다. 죽은 자를 위한 최고급 주택지라 할 수 있는 레콜라타 묘지를 둘러 보았다. 1882년에 개설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공동묘지로 역대 대통령 13명의 묘소를 비롯하여 유명한 페론 대통령의 부인이기도 한 에비타의 무덤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무덤의 주인 행세를 하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잉카인의 마지막 비밀 도시인 맞추피추 가는 길은 쿠스코에서 우르밤바강을 따라서 구불구불한 산악길을 관광열차로 약 3시간 동안 달린후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험악한 고갯길을 한참동안 달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도보로 약 30분 동안 걸어서 표고 2280M의 산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미 닭이 알을 품듯 드높은 산정에 아늑하게 들어선 앙상한 건축물의 잔해가 강렬한 태양 볕 아래 거짓말처럼 드러났다. 이것이 바로 공중 도시, 잃어버린 도시라는 잉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람빙검이 1911년 7월에 숲속에 덮여 있는 계단식 밭을 올라가서 맨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의 그 흥분, 그 감격은 어떠했을까. 망국의 한을 품고 맞추피추 봉우리 밑에 숨어 지내던 잉카 사람들은 다시 스페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해 가다가 정글 속 어딘가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맞. 추. 피 추. 뭔가 현대인이 잃었던 고향처럼 어머니의 품안을 연상케 한다. 페루 이키토스 지역엣 아마존 강을 따라 모터보트를 타고 약 한 시간 반 동안 달려가 밀림에서 만나 본 토착 원주민의 생활을 둘러보며 가슴 아릿한 인간 본연의 순수함에 빠져 들었다. 그들과 잠깐 어울려 전통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들에 대한 보답으로 물건을 사 주고 떠나오게 될 때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어린 소녀의 눈빛이 안아 주고 싶도록 애절하였다. (페루 ) 3 *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도시, 이루쿠츠크에서 약 8시긴 가량 버스로 달려 와 알혼섬에 이르는 선착장에서 바이칼 호수를 만났다. 한낮의 햇볕을 받아 푸른 진주처럼 반짝이는 거대한 호수 앞에 머나먼 여정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했다. 전 세계 담수량의 약 20%를 차지한다는 바이칼호는 터키어로 물고기가 풍부하다는 뜻으로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졌다. 바이칼 호수엔 27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지만 샤먼의 고향으로 알혼섬이 유일하게 유인도로 알려졌다. 브리아트라는 원주민이 대부분이고 소수 러시아인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덕빼기에 러시아 정교 건물이 한 채 들어 서 있다. 구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무속인들이 큰 탄압을 받아 대부분 쇠퇴하고 말았지만 아직도 일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세계 무속인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알혼섬은 몽골족 칭키스칸의 어머니 고향이라는 설과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설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있어서인지 더욱 친근감이 든다. 바이칼 호수 너머 해가 진다. 낙조에 반사된 윤슬이 천상의 계단처럼 펼쳐진다. 천길 벼랑의 바위에 앉아 나는 숨막힐듯한 이 순간을 어린 왕자처럼 지켜본다. 노을에 곱게 물든 구름이 한 편의 서정시를 낭송하는 동안에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바이칼호 언저리에 서늘한 바람이 잠을 깬다. 밤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별 세상이 된다. 별이란 별은 모두 얼굴을 드밀고 자신의 최선을 다해 창조주를 찬양한다. 새벽녘에 알혼섬의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맨발에 와 닿는 몽돌과 파도의 감촉, 수정 같은 호수에 말갛게 씻긴 고운 몽돌 몇 개를 주었다. 바이칼의 심장이 가슴에 와 닿는 듯 섬뜩하도록 차가운 물결에 발목을 흠뻑 적신다. 춘원 이광수가 쓴 ‘유정’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그는 직접 가보지도 않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슬픈 사랑을 위로하듯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시베리아 언덕에 올라 / 나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이칼 호수를 / 가슴에 담았다 이제 죽어도 된다 (졸시. 바이칼 유서 전문) 러시아 속의 유럽이라고 불리우는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는 정도 300주년을 맞이해 여기저기 건물 벽면에 현수막이 눈에 띤다. 물 위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네바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해 있다. 잿빛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에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물, 지저분한 골목길 등 약간 음침한 분위기가 어울린다는 도시,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의 무대인 탓에 더욱 친근감이 간다고나할까. 유람선을 타고 네바강을 오르내릴 때 피터 대제가 북유럽 최대의 도시를 꿈꾸며 이룩해 놓은 여러 건물- 피터폴 요새, 대성당 및 첨탑의 천사, 에르미타쥬 박물관, 교도소 등이 조화를 이루며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 궁전을 포함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대영 박물관, 루부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비록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지 못했지만 약 10시간 동안 4인 1실의 좁은 침대칸에서 레일 위를 구르는 쇠바퀴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벗삼아 잠 못 이루는 하룻밤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특별한 느낌이었다. 바로 이런 체험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독립군으로 혹은 벌목공으로 서러운 유랑생활을 하지 않았으랴. 붉은 광장이 있는 크렘린 궁에 들어가기란 쉽잖다. 군인들이 지키고 서서 입장객들을 한 명 한 명 공항에서나 하듯 보안검색을 엄격히 한 후에 들어 갈 수 있었다. 한 줄로 늘어서서 레닌 무덤을 참배할 때 지하 계단은 어둑컴컴하였다. 사진 촬영은 일체 금지 되고 보초병들의 날카로운 감시를 받으며 그들의 지도자이고 우상인 유리관 안에 조명을 받고 미라로 누워 있었다. 대머리에 작은 얼굴, 콧수염, 보통의 키. 바로 이분이 세계 역사를 뒤흔든 붉은 이데올로기의 주인공이던가. 레닌 무덤 뒤편엔 스탈린을 비롯한 역대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인물들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직도 구체제의 음침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건 화려한 9개의 양파형 돔 지붕으로 성 바씰리 성당이었다. 이 건물을 짓고 이반 대제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성당은 없다‘ 는 생각에서 건축을 담당한 두 사람의 눈을 빼버렸다는 잔인한 얘기가 전해진다. 만약 그들을 살려두면 이와 비슷한 다른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붉은 광장으로 상징되는 모스크바 시가지를 벗어나 ’야스나야 뿔리나‘ 지역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끝없는 들녘과 자작나무 숲을 바라본다. 모스크바에서 서남쪽으로 거의 5시간을 달려 도착한 톨스토이( 1828- 1910)생가는 마치 드넓은 농장을 연상케 했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버드나무가 휘늘어진 연못이 나타나고 살찐 토종닭 몇 마리가 관광객들이 던뎌 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해 사람을 조금도 겁내지 않은 채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그가 7년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집필 했다는 서재 겸 도서실에 약 2만 4천 권의 장서가 비치돼 있었다. 철학, 문학, 역사 등으로 이루어진 서적은 39개 언어로 된 책들이고 그는 자신이 직접 13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하며 한 권 한 권을 정독하여 남긴 밑줄이 책갈피마다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박학다식한 분이었고 노력하는 분이었나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그 때 당시 그가 쓴 원고료가 한 페이지당 500루불에 팔렸으니 얼마나 유명세를 탔고 고소득의 작가로서 지위를 누렸다. 그는 부인 소피아와 사이에 1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증 5남3녀만 생존했고 막내 딸은 90여 세까지 살아 부친의 초대 박물관장직을 지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딸과 부인의 초상화가 걸린 벽면에서 보듯이 그는 무척 가정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며 비서실의 직원이 하루에 20여 통의 편지를 처리해야 할 만큼 유명인사로서 교류가 활발했다. 그는 만년에 자신의 귀족적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으며 마지막 생애의 한 부분을 가출하여 떠돌다가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발병하여 사망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세인들은 부인과의 불화설을 내세우지만 확인되지 않은 얘기일 뿐이란다. 아무런 비석 하나 없이 농장 귀퉁이에 초라한 봉분 하나. 그게 그의 무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의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위치에 우리의 위대한 문호는 바람결에 살랑대는 이파리들 사이로 새나오는 햇볕을 받으며 고즈넉하게 누워 있었다. 유년 시절에 그가 뛰놀던 추억의 장소, 바로 그 자리에 그의 유언대로 묻힌 것이란다.그의 초라한 무덤을 몇 번이고 뒤돌아 보며 긴 숲길을 돌아나올 때 러시아의 여름 하늘은 그 분의 고귀한 영혼을 닮은 듯 한층 푸르고 맑게 빛났다. 4* 스웨덴. 핀란드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되었다는 뜻의 스톡홀름 항을 떠나 헬싱키로 가는 길은 망망대해, 발틱해를 건너가는 1박2일의 뱃길이다. 실자라인(초호화 유람선)은 그 안에 아파트와 쇼핑센터, 유흥 시설, 식당, 수영장 등을 골고루 갖춘 거대한 도시가 바다 위에 둥실 떠가는 것이랄까.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괜히 불안한 생각도 든다. 북극 지역이라 그런지 백야 현상 때문에 해가 지고 나서도 밤 11시가 가까운데도 어둡지 않고 대낮같이 환하다. 수십 개의 섬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푸른 숲 사이로 하얀색의 별장들이 눈에 띤다. 저런 곳에서 세상만사 잊고 일년만 아니 한달 동안만이라도 느긋하게 지내보고 싶어진다. 역사적으로 650년 동안 스웨덴의 지배와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핀란드 국민들에게 정체성을 찾게 하고 애국심을 고취한 ’핀란디아‘의 작곡가, 시벨리우스 공원에 이르렀다. 24톤의 강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그의 기념비와 커다란 귀가 인상적인 얼굴 모양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1967년에 완성된 이 조각품으로 여류 조각가 에이라 힐토넨의 명성이 크게 알려졌다고 한다. 5* 우즈베키스탄 멈추어 버린 시계는 1966년 4월 26일 새벽 5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날의 대지진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설치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의 발길이 계속된다. 타쉬켄트는 ’돌의 도시‘라는 의미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며 중앙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아득한 옛날, 대상이 왕래하던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다.제2의 도시는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유적지가 펼쳐진다. 이 지역은 더욱 우리에게 의미있는 곳으로 1937년에 러시아의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척박한 환경을 딛고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인간승리의 주인공, 김병화 할아버지의 집을 한국문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그는 57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3남3녀를 두어 모두 출가 시키고 부인과 단 둘이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국 땅의 고려인, 애환의 산증인을 통해 다시 한 번 민들레 꽃씨처럼 지구촌 곳곳에 퍼져나간 한민족의 강인한 생활력이 느껴진다. 비비하님의 모스크 사원은 티무르 왕의 여러 부인 중 8번 째 부인을 위해 특별히 짓게 되었다고 한다. 왕이 건축가에게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을 제 때에 완성할 것을 명하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그 부인이 배신했다. 믿었던 건축가와 부인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자 왕은 두 사람을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려 자결케 했다. 건축가는 그대로 떨어져 즉사했지만 부인은 죽지 않고 나비가 돼 하늘로 훨훨 날아 가 버렸다고 한다. 비록 이룰 수 없던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이었지만 전설 같은 이야기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아프로시압 박물관에 전시된 부산고구려$ 7세기 무렵의 벽화에 놀랍게도 고구려 시대의 사신들이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왕께 조공을 드리러 온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6 * 호주 . 뉴질랜드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인 시드니에서 이 나라의 상징적 건축물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유람선을 타고 갈매기의 날개짓을 따라 시드니항을 한바퀴 돌아 본다. 시드니의 북부와 남부를 잇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아치형 다리인 하버 브리지(높이 134m)는 아찔한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어 그곳에 오르는 관광객들도 눈에 띤다. 아내자의 설명을 따르면 이 다리를 기어 올라 자살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시 당국에서 고민하던 중 이곳을 오르려면 200불이란 요금을 내도록 하니 확실히 자살 건 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오페라 하우스는 소라 껍데기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고 항구에 떠있는 아름다운 요트를 연상 시킨다. 1953년에 공사가 시작 돼 1972년에 완공된 건물로 덴마크 건축가의 설계로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그러한 난공사를 추진해 낸 그븐의 용기와 신념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호주란 나라는 바다 밑 대륙붕이 솟구쳐 올라 이루어지 탓으로 건조하고 암벽층이 많아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생존하기 어렵지만 유칼립투스 나무는 이러한 악조건을 잘 견뎌내고 적응하는 데 성공하여 이 나라의 대표적인 수종ㅇ이 되었다. 지난 시드니 올림픽 때 마스코트로 유명했던 코알라란 귀여운 잿빛 동물은 이 나뭇잎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포트스테판에 이르러서야 과연 이 곳이 육지가 아닌 남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바다 맞은 편에 모래 사막이 이루어져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막 길을 달려 모래 언덕에 이르러서 이제 널판지를 이용해 모래 썰매를 타는 재미를 즐겼다. 뉴질랜드 북섬의 중심지인 오클랜드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화산지대인 로토루아까지 가는 동안 한 마디로 지상낙원이 바로 이곳인 듯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도 화산 활동이 활발한 때문인지 살아 있는 유황 냄새가 가득하다. 와카레와레란 곳에 이르니 마치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진흙 땅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얼마나 땅이 뜨거운지 놀란 개구리가 펄쩍펄쩍 뛰듯이 공중으로 진흙이 솟구친다. 이곳의 원주민인 마오리족들은 키가 크고 골격이 장대하고 여자들도 뚱뚱한 체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원래 식인종이었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끔찍한 느낌이었지만 코를 비비며 인사하는 독특한 습관이 한편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지싱의 세계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와이토모 동굴 안에 들어 가니 밤하늘의 화려한 은하수가 펼쳐진다. 동굴 속에 서식하는 개똥벌레들이 연출하는 놀라운 생존전략이었다. 날벌레들을 잡기 위해 피쉬라인(낚시줄)을 샨델리아등의 수실처럼 늘어 뜨리고 있는 그들은 애벌레 때에 가장 왕성한 빛을 낸다고 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고여 강물을 이루고 그 수면에 비친 개똥벌레의 불빛이 한강변의 야경처럼 아름답다. 7 *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바다 주에 있는 라스베가스를 찾아 가는 길은 끝없는 모하비 사막의 횡단이었다. 자수하라라는 이름의 선인장 나무가 사막을 지키는 병정처럼 늘어서 있고 가시 달린 풀포기가 듬성듬성 돋아나 광야의 황량함을 덜어 주는 듯하다. 어쩌다 사막이 멈춘 곳에 높은 산등성이가 나타나고 수많은 프로펠러 모양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장관이 보였는데 다름 아닌 풍력 발전소라고 한다. 네바다 주에서 일곱 번 째로 큰 도시이고 전체인구 230만 중에 100만 명이 모여 산다는 라스베가스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세계 최고의 위락도시임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그 야경의 화려함은 사막의 불야성을 이룬다. 호텔 카지노장마다 24시간 횡재의 유혹을 못 이기고 세계 각국에서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인파들 때문인지 돈을 잃으면 부부간의 화합이 잘 깨지는 탓에 이곳은 이혼이 아주 쉽게 잘 이루어지는 도시로 악명을 떨친다고 한다. 아리조나 주에 있는 고산지대인 그랜드캐년은 스페인의 탐험가, 돈오페즈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1540년) 그만 두 무릎을 꿇고 ’그란테(거대하다)‘하고 외쳤다고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힌 거리가 446km에 이른다고 하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km보다 더 긴 어마어마한 규모에 협곡의 평균 깊이가 2km로 우리나라의 태백산의 높이에 이른다고 한다. 13개 지층이 떡시루처럼 차곡차곡 얹혀 수평을 이루거나 고대의 사원 같은 지붕을 한 바위들, 형형색색의 빛깔들이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대협곡은 크게 3500년 전에서 6500만 년 전에 콜로라도 강물의 침식작용이거나 화산 폭발로 인한 호수가 협곡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이런 환경 속에도 인디언 부족이 300명쯤 골짜기의 녹지대에 마을을 이루어 사는가 하면 경비행기를 타고 대협곡의 전모를 둘러보거나 급류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 래프팅을 즐기는 관광 코스도 있다. 태어나서 처음 미국 땅의 서쪽 귀퉁이를 밟기 위해 10회 한민족 문학인 세계대회가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 시간도 10시간 이상 걸려 기내에서 밤샘하고 동해안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태평양 바다를 건너간다는 일에 긴장이 됐다. 항상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지만 이륙해서 무사히 목적지까지 착륙하기까지 그것은 결코 인간의 몫이 아닌 하나님의 몫이라 생각하고 기도할 따름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와 있는 한인 교포가 약 205만인데 그 중에 L.A지역에 약 30만이 코리아 타운을 이루고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다. 호텔 로비에서 뜻밖에 만나게 된 전 직장의 여직원은 한 책상에 마주 앉아 근무했던 분으로 우리 일행의 가이드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한다. 그녀는 마흔이 넘도록 노처녀로 지내다가 약 5년 전에 재미교포를 만나 결혼하여 살고 있단다. 이곳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사촌 조카의 집도 방문하고 함께 드라이브도 할 기회를 가졌다. 레돈도 해변에서 남쪽 산페데로로 향해 뻗은 해안도로는 태평양을 즐길 수 있는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사촌 자매 3명과 나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밟으며 파도에 발목을 적셨다. 맏언니인 큰 조카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3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 온 탓에 더욱 정감이 느껴진다. 벌써 우리는 50대 초반에 이르러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으니 얼마나 세월은 줄달음쳐 가고 있는 것일까. 중년 부인이 된 조카의 밝고 명랑한 성격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까운 세계적 피서지인 산타모니카 해변에 황혼이 드리운다. 시원스레 부서지는 거대한 바다의 파도와 괭이갈매기들의 날개짓, 난간에 기대어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들, 가게마다 화려한 조명등 아래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는 거리가 먼 듯한 흑인 청년 한 명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가 막을 내리듯 캘리포니아 산맥 너머 석양은 이제 자취를 감추려 한다. 남태평양의 파란 물결이 와이키키 해변에 펼쳐진다. 동편 야자수 숲 사이로 달이 얼굴을 비치더니 갑자기 건너편 수평선에 오색 무지개가 걸린다. 달밤에 웬 무지개인가 싶어 눈을 의심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관광객이 이것은 rainbow가 아니고 moonbow라고 일러 준다. 어찌된 자연현상인지 몰라도 달빛에 비친 수증기가 무지개로 변한 것이란다. 이런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잠시 얼굴을 보여주고 아쉽게 사라지고만 달빛 무지개. 그것은 천국의 환상인 듯싶었다. 8 * 스페인 세르반테스( 1547-1616)의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가 출판된지 400주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 위치에 있다. 공원에 그의 작품 속 인물을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허황한 중세 기사도를 꿈꾸는 돈키호테와 술주정뱅이 하인인 산초와 병든 말, 로시난테와 방앗간 집 여인을 바라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웠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 했다. 우연한 일치인 줄 모르지만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1616년 4월23일에 죽은 날짜가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행일정과 맞아 떨어진 행운으로 마침 돈키호테 광장에서 스페인 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좀 떨어진 코르도바의 이슬람교 사원 앞 골목길에 세르반테스가 집필했던 이층집 여관이 옛모습대로 공개되고 있었다. 가난했던 그는 자신의 조용한 개인 서재도 갖지 못해 이런 허름한 여관방을 빌려 그처럼 방대한 작품을 저술했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뜨거운 창작열에 고갤 숙인다. 집시의 춤 같은 플라밍고는 우리나라의 창(唱) 가락에서 나오는 탄식이나 한숨 같은 분위기를 닮았다. 3명의 무희와 2명의 남자 댄서, 백뮤직으로 기타 연주저 한 명, 드럼 맨, 마이크를 붙잡고 애절한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 한 명으로 구성 되었다. 마침내 이마에 흥건히 흐르는 땀방울이 무대 위에 떨어지고 올레(잘한다)라는 외침 속에 공연은 끝이 났다. 나도 집시의 역마살이 끼었는지 53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문인들과 세계를 유랑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스페인의 오랜 전통과 정열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투우 경기를 관람했다.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을 한 곳, 바르셀로나에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 투우 경기는 해가 질 무렵 오후 6시쯤 경기장에 그늘이 반쯤 가릴 때 시작하여 약 2시간 가량 진행된다. 20분 간격으로 여섯 마리의 소가 한 마리씩 등장하여 차례로 죽임을 당할 때까지 계속 된다. 투우용 소들은 들녘에 방목된 서너살 짜리로 힘이 세고 건강한 황소로 선별돼 경기 하루 전에 24시간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그래서인지 경기장 밖으로 나올 때 힘차게 뛰어 나오지만 햇빛에 눈이 부신지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투우사들과 황소가 일대 일로 맞붙어 싸우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 이미 투우사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 각본대로 진행이 되고 황소는 기진맥진해 쓰러지게 된다. 죽은 황소는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밧줄에 끌려 경기장 밖으로 퇴장한다. 동물 보호단체에서 잔인한 투우 경기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법하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진 가우디(1852-1926)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소아마비 환자였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로부터 자연에대한 관찰력을 익혔기에 그토록 자연친화적인 놀라운 건축미를 보여 준 게 아닐까. 그는 건축설계를 할 때 항상 자연을 통하여 영감을 얻었고 그것을 표현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오로지 건축 일에 매달렸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구엘 공원과 성가족 교회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다. 성가족 성당은 1882년부터 시작하여 아직 신축중이고 앞으로도 2025년까지 완공 목표를 세우고 있다. 신고딕 양식으로 각 건물의 내부구조가 버섯이나 파도, 삼엽충, 불가사리, 소라, 나무 숲 등 자연을 닮은 설계로 되었고 170m에 이르는 여러 개의 첨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될 것이라 한다. 성가족(예수, 마리아, 요셉)을 중심으로 입구의 벽면에 예수의 탄생, 십자가의 죽음, 가롯 유다의 배신, 베로니카의 손수건 등 성경 내용이 자세하게 조각 돼 있었다. 가우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자연이야말로 완벽한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예술 작품은 단지 그것의 모방에 불과할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국의 하늘 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한 황영조의 동상을 이곳 경기장 입구에서 만나니 가슴이 뿌듯함을 느낀다. 9 * 포루투갈 이곳 파티마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세 명의 어린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기적이 이루어진 것으로 유명하여 기독교도들의 최고의 성지로 꼽힌다. 첫째 계시는 러시아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 결국 소련의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둘째 계시는 교황을 위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1981년 그가 프랑스를 방문 했을 때 터키인이 저격했지만 중상을 입어 회복된 사건이 일어났다. 나머지 계시의 말씀은 가톨릭 내부에 관한 문제인데 아직 무엇인지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신자는 성당 입구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제단에 이르기까지 긴 통로를 무릎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유럽의 북서쪽 땅끝 마을인 까르데로꼬 가는 길은 마치 우리나라의 해남에 있는 갈두리 마을 가는 곳처럼 구불구불한 산 길 따라 차체가 한없이 흔들거린다. 심한 멀미로 구토가 나오기 직전의 상황에서 바람결 타고 향긋한 내음이 구세주처럼 코에 스며든다. 아, 눈앞에 펼쳐진 꽃 바다. 해안 절벽을 뒤덮은 멍게 선인장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반긴다. 굵은 잎사귀 사이에서 연보랏빛 꽃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해풍에 흔들린다. 꽃길 따라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니 대서양의 포효 소리가 아찔한 현기증으로 다가선다. 오대양 중에 가장 크고 넓다는 대서양을 바로 가까이서 바라보며 이곳에 발을 디뎠다고 생각하니 벅찬 감회를 맛본다. 아득한 수평선을 한없이 바라보며 해풍을 맞고 싶지만 시간 제한으로 서둘러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갈매기 떼처럼 소란을 피우다가 훌쩍 떠나 올 수밖에 없었다. 10 * 모로코 어딘지 알 수 없는 하얀 슬픔을 차도르에 감싸고 서둘러 걸어가는 이슬람교도 여인들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변 카페에서 민트차에 싸한 혀끝을 적시며 대서양의 포효 소리가 사원에서 들려 오는 코란의 경 읽는 소리인 듯 눈을 감아 본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땅끝인 남아연방의 케이프 포인트(희망봉)에서 북쪽의 꼭지점(탕헤르)인 모로코까지 밟아 본 감격도 이러한데 이번에 박영석 탐험대장이 이룩한 산악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목표인 북극점 정복의 감회는 얼마나 대단하랴. 영화로 유명한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 항구로 가는 길은 사월의 햇살 아래 들녘마다 노란 유채꽃이 유혹하고 엉겅퀴꽃도 지천으로 피어났다. 그 사이에서 소 떼들이 한가롭게 꽃잎을 따먹고 야자수 잎사귀 사이로 대서양의 초록빛 바다가 넘실거린다. 차에서 내려 봄빛 무르녹는 에덴동산에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달리는 버스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11 * 튀르키예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끼고 있는 이스탄불은 이천년이 훨씬 넘는 역사적인 고도로 이곳을 지배한 나라의 지도자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풀,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로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동서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이고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이곳은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인 성소피아 성당, 이슬람 사원인 블루모스크, 마차 경기장인 히포드럼, 지하 물창고,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술탄들이 거처하던 톱카프 궁전 등의 유적지가 잘 보존 돼 있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겉모습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 되고 성당 내부 벽화도 상당 부분 훼손 돼 금 모자이크 장식으로 얼마나 뛰어난 기독교 건축물이었는지 아까운 생각이 든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귀한 문화유산을 망가뜨려야 했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하 물 창고는 전시에 대비하여 엄청난 규모의 시설로 이루어져 아직도 맑은 물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동전들이 반짝거렸다. 비잔틴 부산고구려$ 시대에 희랍 신화에 나오는 대리석 신상을 뽑아다가 거꾸로 처박듯 기둥을 세원 놓은 게 흥미로웠다. 술탄들이 거처하던 톱카프 궁전은 보석의 방에 86캐럿짜리 눈부신 물방울 다이어몬드가 49개의 작은 초록빛 다이어몬드로 둘러싸여 황홀케 했다.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에페소는 사도 요한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를 모시고 지냈다. 사도 바울로 인해 복음이 비교적 잘 전해진 이곳에 거처를 마련했으며 주요 기독교 성지로 꼽힌다. 사도 요한의 무덤 교회가 4복음서를 상징하는 네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바닥은 천국의 열쇠를 닮은 대리석이 조가돼 있었다. 사도 누가의 묘소도 한글표지판으로 우리나라의 ’성서 보존회‘에서 발굴했다는 내용으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에페소시는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아테네 다음의 도시였고 그리스도 시대였을 때는 예루살렘 다음의 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나 서기 17년에 대지진 등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폐허로 변하였다. 셀수스 도서관은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전도 활동을 한 곳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두란노 서원이 아난가하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2만 5천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원형극장이 거의 원형을 유지한 채 발굴 되었는데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현재의 모습은 서기 1, 2세기 무렵의 유적이라고 한다. 마이크 없이도 방음장치가 잘 돼 일행 중 두 명이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니 아주 잘 들리고 생음악 감상으로 그만이었다. 파묵칼레는 하얀 빙폭의 설경이 눈부시게 펼쳐져 환상적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석회질 바위가 눈처럼 햇볕에 희게 반사된 것으로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더구나 온천수가 지하에서 콸콸 흘러나와 석회질 바위에 이르러 야외 온천장으로 변해 관광객들이 맨발로 뛰어 들어가 발목을 적시며 거닐 수 있었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시대의 유적지에 어느 황제는 의심이 많아 일반 군중이 볼 수 없도록 높은 대리석 담을 세워 자신만이 걸어 다니는 길을 만들어 황제의 길로 불렀다. 카파도키아는 튀르키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특징을 지닌 곳이었다. 약 3백만년 전 화산 폭발과 대규모 지진 활동, 오랜 풍화 작용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걸작품으로 기암괴석의 파노라마이었다. 우주 속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듯 기이한 분위기에 압도 되었다. 버섯 모양의 바위, 키스하고 있는 남녀 모양의 바위, 낙타 모양의 바위, 신혼부부의 다정한 바위,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한 바위, 요정 바위 등 상상의 나래를 얼마든지 펼 수 있는 동화 속 세계를 맛본다. 온통 바위들만의 세계에 초대 받은 느낌이랄까. 멀리서 보면 거대한 벌집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바위산이지만 가까이 보면 모두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라고 한다. 1950년대까만 해도 젤베 계곡의 석굴은 실제로 거주지 역할을 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굴 내부는 카파토키아 같은 건조한 지방의 주거지로 그만이었다. 괴레메 동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365개의 예배당이 존재했고 여성 전용 수도원 및 주변에 비둘기를 길러 그 똥과 깃털로 연료로 사용했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이슬람 교도들이 동굴 교회에 그려진 벽화 만으로 아무렇게나 사과 교회니, 뱀 교회니, 샌들 교회니 하여 이름을 붙여 놓았다. 데린구유 지하도시는 ’깊은 웅덩이‘란 뜻으로 한 농부가 닭을 쫓다가 우연히 이상한 구멍이 발견 돼 세상에 알려졌다는 안내자의 설명이었다. 지하 100m 깊이에 2만여 명이 거주할 수 있고 지표면에서 60m아래인 지하 8층까지만 내려갈 수 있었다. 앞 사람을 잘 따라가지 않으면 복잡한 미로처럼 곁가지로 퍼져 나간 캄캄한 동굴 속에서 여지없이 갇히고 말 것처럼 여겨진다. 상상을 초월한 지하 두더지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인류역사에서 다시는 카파토키아 같은 비극적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고 종교란 이름으로 죽고 죽이는 종교 전쟁이 지구촌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12 *그리스 그리스 반도의 끝, 수니온곶까지 이르니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포세이돈 신전이 반긴다. 삼지창을 들고 파도를 일으키고 비와 구름, 바람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바다의 신이 내려다보는 에게해에 저녁놀이 지고 있다. 물결 위에 어리는 아름다운 햇살 기운을 따라 포세이돈이 걸어 다니며 이곳을 드나드는 선박의 운명을 다스렸을까. 영국 시인, 바이런이 이곳을 여행 중 에게해의 나라, 그리스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터키의 지배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데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아테네 북부 쪽에 자리한 고린도에 갔을 때 조용한 시골 동네의 버려진듯한 들녘 가운데 도리아식 뭉툭한 기둥 일곱 개가 버티고 있었다. 황량한 폐허. 조금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것이 바로 태양신으로 알려진 아폴론 신전이었다. 그 뒤쪽으로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그곳에 고린도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미의 여신) 신전이 모셔졌다. 그때 당시 이곳은 아테네 다음으로 번성한 상업과 무역 도시로 이름났고 무엇보다 사도 바울의 기독교 선교지로 알려졌다. 그가 우상숭배와 창녀들이 들끓었던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가 붙들려와 재판을 받았던 비마라는 기념 터가 성경에 나오는 그의 탄식 소리로 들려오는 듯했다. 유대인은 기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장 22절-24절) 아테네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의 바위 언덕에 우뚝 솟은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모신 곳이다. 그리스 여러 신 중 누가 이곳의 수호신이 될 것인가 대해 포세이돈과 아테나 여신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포세이돈은 그의 상징인 삼지창을 휘둘러 바다의 짠물을 주겠다고 했고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 나무를 선물하겠다고 하여 그가 선택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적응하여 효자 노릇을 하는 올리브 나무가 가는 곳마다 눈에 띠었다. 또한 아크로폴리스는 어떤 신령한 기운이 감싼 탓인지 극성스런 비둘기들도 얼씬하지 못한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세기 무렵 페리클레스가 설계하고 조각가 피아디아스가 15년이나 걸려 완성한 건축물로 현재 유네스코 문화 유적 1호로 지정 돼 있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곳은 신전에서 교회로, 그 이후에는 사원으로 사용되었다가 터키인들의 화약고로 이용되기도 했다. 황금과 상아로 장식된 여신상도 사라지고 한 쪽에 자리한 박물관에 어깨가 잘리거나 코가 달아난 여러 모양의 부서진 조각상을 전시해 두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시가지에 제우스 신전이 보이고 옛날의 시장터인 아고라도 눈에 띤다. 언덕 아래 이로디스 아티쿠스라는 원형극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 1만 7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아직도 객석의 보존 상태나 방음 장치가 완벽하여 수시로 여름철에 유명 음악인들의 콘서트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신들의 나라, 그리스가 어떻게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 정교 국가가 됐는지 그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 듯하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까운 거리에 숲속 공원 쪽으로 견고한 동굴이 나타나고 쇠창살이 굳게 잠긴 감옥이 나온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마친 장소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가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글귀를 인용한 것이라 한다. 그는 제자들의 탈출 권유에도 거절하고 ’악법도 법이다‘하면서 자신의 신념대로 사형집행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비록 아테네의 양심을 대표하여 억울하게 옥사했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훌륭한 제자를 통하여 결국 그의 뜻을 이루었다, 아무리 튼튼한 감옥일지라도 그의 고귀한 정신은 결코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13 *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바얀고비 사막까지 가는 길은 가도가도 끝없는 초원이었다. 지평선이 몇 번씩 바뀌어도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건조한 사막 기후 탓으로 구름 같은 흙먼지가 날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꼭 가려도 캑캑거릴 수밖에 없었다. 약 8시간 이상을 달려 마침내 사람 사는 동네가 보이고 겔로 이루어진 관광촌이 반긴다. 여행객의 숙소로 만들어진 겔 안에는 세 명이 잘 수 있는 침대와 중앙엔 난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목축업을 하는 겔에 들어가 보니 부부와 아이 한 명이 잘 수 있는 침대가 보이고 중앙 난로는 말린 소똥을 연료로 쓰고 있었다. 양고기를 천장에 여기저기 걸어 놓고 말려서 식량으로 쓴다면서 수줍어하는 여인네 모습이 우리와 같은 몽골족 한 핏줄이라서 그런지 친근감이 묻어난다. 고갯길을 가다가 자주 눈에 띠는 돌무더기며 남근상, 거북바위 등을 모시는 토속신앙도 전혀 낯설지 않게 여겨진다. 끝없는 바얀고비 사막을 달려오는 동안 소변을 보기 위해 버스가 잠깐 머무는 동안 스텝 지역에서 여러 동물을 만났다. 가장 많이 눈에 띠는 염소나 양, 야크, 그리고 말과 소, 가끔 낙타 떼도 나타난다. 그들은 등에 혹이 두 개씩 달린 쌍봉 낙타로 가서 만져 봐도 피하지 않고 순한 눈망울을 깜빡인다. 발걸음을 한 발 옮길 때마다 후다닥 여기저기서 날아 오르며 찌르륵 찌르륵 울어대는 메뚜기 떼들이 수도 없이 초원을 점령하고 있다. 무슨 동물의 뼈인지 햇볕에 하얗게 바랜 채 여기저기 뒹군다. 끝없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고...사계절 따라서 몽골초원에 펼쳐지는 생명의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게 되리라. 14 * 인도 인도 북부의 카쥬라호는 힌두교 사원의 벽면을 빼꼭하게 둘러싼 조각품들, 그중에서도 남녀교합상인 미투나 상들이다. 마치 포르노 영화에서나 봄직한 남녀간 성행위의 다양한 체위를 사실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는 점이다. 기혼자보다 미혼자 쪽에서 더욱 낯부끄러운 장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집단 성행위는 물론 개나 말과 교합하는 장면까지 조각된 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성개방이 나오고 성의 상품화를 문제 삼고 있지만 이미 그 당시에 수준 높은 카마수트라(인도의 성고전)가 완벽하게 존재했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성전에 이런 미투나상을 조각하게 된 동기는 당시의 왕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네 가지 부분중 (첫째 종교 생활, 둘째 생업에 종사하는 일, 셋째 성생활, 넷째 죽음)의 하나인 성교육을 백성들에게 실시코자 함이었다. 카쥬라호는 힌두교의 전형적인 카스트(신분제도)를 엿볼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부유층과 빈민층이 사는 곳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었다. 여기저기 쇠똥을 쌓아 놓고 연료로 쓰기 위해 햇볕에 말리는가 하면 하수구는 막힌 채 내려가지 않고 녹슨 펌프가 공동우물에 설치돼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계급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현재 처지에 만족하는 그들.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이나 원 다러를 외쳐대는 아이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타지마할 궁전은 파란 하늘아래 숨을 멎게 하는 하얀 대리석 건물이었다. 건물의 정면 마당에 수로 모양의 연못과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고 좌우에 이슬람교 사원과 회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왕궁이 아니라 샤자한(무굴제국의 황제)이 17년의 결혼 기간에 14명이나 자녀를 낳고 마지막 15번 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에 세상을 떠난 왕비의 무덤이었다. 얼마나 죽은 왕비를 사랑했으면 샤자한은 무려 22년(1631년-1653)에 걸쳐 막대한 국고 낭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이런 호화 무덤, 최고의 걸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또한 그는 이와 같은 훌륭한 다시 짓지 못하도록 건축에 참여했던 장인들의 오른 손을 모두 잘라 버렸다고 한다. 그 댓가인지 타지마할을 만든 장인들의 후예만이 지금도 이곳 아그라에서 공예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특혜를 주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건물 구도가 칼로 반을 자르면 완전히 대칭을 이루도록 지어졌다. 욕심많은 황제는 자신의 무덤도 타지마할 뒤편의 야무나 강 건너 편에 검정 대리석으로 짓고 두 무덤을 죽어서도 오갈 수 있도록 구름다리로 연결하려고 구상하였다. 그러나 넷째 아들이 국고 낭비를 한다는 이유로 정변을 일으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지마할 왕비의 무덤 옆에 묻히게 됐다. 유채꽃 들녘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지나니 북부 사막 지대인 라자스탄 주의 수도인 자이푸르가 나타난다. 이곳은 도시의 건물이 특이하게도 모두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 핑크 시티라 불린다. 도시의 모든 건물이 한 개인 (왕족의 후손)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에게 임대료를 내고 있단다. 자아푸르를 세운 자이싱 2세(무굴황제)는 천문학에 깊은 관심과 조예를 가져 약 3백년 전에 세운 천문대가 지금도 해시계나 별자리 측정 등 정확히 들어 맞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왕은 12명의 왕비와 353명의 후궁을 거느렸는데 하루에 한 명씩 만날 수 있도록 했고 각자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이런 엄청난 숫자의 방들이 미로처럼 설계돼 있어 어떻게 자기 방을 찾아다녔을지 궁금해 진다. 실제로 일본인 관광객 한 명이 이곳을 관람하다가 출구를 잃어 하루가 지난 다음에 발견 됐다고 한다. 거울의 방이란 곳에 이르니 온 벽이 작은 거울들로 둘러싸여 불을 켜면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게 궁전을 꾸미는 인테리어 솜씨도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느끼게 한다. 바람의 궁전이라는 붉은색 건물은 왕의 후궁들이 바깥출입을 못하기 때문에 시가지 가까운 곳에 지어져 그들이 창문을 통하여 겨우 길거리 모습을 보게 했다니 얼마나 답답한 그들의 일상생활인가. 힌두교의 나라,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갠지스 강으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아름ㄷ운 길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를 향하는 것 같다. 저녁 무렵의 바라나시 길거리를 꽉 메운 차량과 인파가 한 발자국도 옮겨 놓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관광객을 향해 손을 내미는 거지들이 모기떼처럼 달려든다. 한 아이의 애처로운 눈빛을 못 이겨 일 달러를 몰래 주었는데도 어느새 낌새를 알아채고 많은 아이가 몰려와 집중공격을 하는 바람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자전거에 좌석을 마련해 놓은 인력거에 몸을 싣고 강변까지 가는 동안 복잡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힘겹게 운전하는 노인의 이마에 삶의 고달픔이 흘러 내린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소들도 대로변을 유유히 걸어가거나 길바닥에 앉아서 되새김질 하며 졸고 있거나 아무 데나 더러운 똥을 싸 놓는다.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힌두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로 아리안 계통의 브라만교가 토착 민간 신앙을 흡수하여 발전된 것으로 다신교의 형태를 띠지만 주로 세 가지 신(우주의 창조신: 브라마. 우주의 유지 신: 비스누. 우주의 파괴 신: 시바)을 하나로 보는 GOD을 섬긴다. 여기에서 나온 독특한 신분제도인 카스트 (브라만: 승려. 크샤트리아: 왕족. 군인. 바이샤: 상인. 수드라: 거지, 집시족) 가 그대로 현실생활에 반영되고 있다. 오늘도 갠지스 강에 뿌려질 시체의 장작 불꽃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쪽에선 순례자들의 목욕과 기도가 계속 된다. 이 물을 성수로 여기고 물통에 담아가는 사람도 있다. 시체는 하루쯤 태워서 다음 날 가족들이 와서 수습한다고 하며 빈부의 차이에 따라 땔감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체를 부산고구려$ 태우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결국 이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마는 인생인데 그토록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건 또 무엇인가. 허망함. 인생무상이 가슴을 저민다. 힌두교 인은 갠지스강이 시바신의 머리털을 타고 천상에서 흘러내린다고 믿으며 매일 저녁때마다 갠지스강변에서 엄숙한 종교의식을 가진다. 다섯 명의 젊은 남자(제사장)가 악기 소리와 신도들의 기도에 맞추어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고 종을 울리며 저 멀리 강변을 향하여 소리치기도 한다. 갠지스강은 단순히 강이 아니라 그들이 모시는 신의 모습이었다. 힌두교에서 비스누 신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불교를 일으킨 석가모니도 그의 9번째 화신(化身)으로 여길 뿐이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산아제한도 없고 약 13억의 폭발적인 인구를 가지고 있고 세계 핵보유국이면서 컴퓨터 기술이 뛰어난 나라이기도 하다. 알다가도 모를 나라, 신비한 영혼의 나라, 인도는 화려한 사리 옷을 걸친 여인으로 나그네를 향해 수줍게 미소 짓는다. 15 *독일 한 대뿐인 셔틀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온 후에 도보로 약간 걷게 되니 절벽 사이로 연결해 놓은 아찔한 철제 다리위에 선다. 저 아래 동화 속 고성이 하얀 백조가 사뿐히 내려 앉은 듯 우아한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고딕식 첨탑이 잇는 지붕에 하얀빛 성채가 조원과 강물이 앞에 펼쳐져 주변 경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자연과 시와 음악을 사랑했던 루디비히 2세가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속에 나오는 백조 기사의 전설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 노이슈반슈타인 성 (일명 백조의 성)이다. 그러나 왕은 성을 완성치 못하고 그곳에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신하들의 음모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고 가톨릭계로 출발한 하이델베르크 대학(1386)은 심오한 학문의 중심지로 특히 고고학과 철학, 의학 계통(뇌 부분)이 유명한 학과라고 한다. 1960년대 유행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낭만이 느껴지는 곳으로 황태자, 학사 주점의 소녀, 케티와의 축배의 노래가 흥겹게 들려오는 듯하다. drink! drink! 유럽의 지붕이라 여겨지는 알프스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로맨틱 가도를 끝없이 달릴 때 남진 가수가 부른 푸른 초원이 그대로 펼쳐졌다. 16 * 오스트리아 거대한 알프스의 젖가슴에서 흘러내려 76개의 크고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찰츠캄마굿 지역의 아름다운 쌍트 볼프강 호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맑은 목소리의 영화 속 주인공인 마리아와 아이들이 부르는 도래미 송이나 요들 송이 들려올 것만 같다. 호수를 건너 다시 케이블 카를 타고 산정(해발 2000m)에 오르니 호수 마을이 한 눈에 그림 엽서처럼 펼쳐진다. 자연과 하나 된 인간의 주거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망대 주변의 숲은 티 없이 고운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깊은 산 속에 숨은 호숫가의 단풍이라 그런지 더욱 산뜻한 매력을 풍긴다. 세계 자연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이 최고의 휴양지로 여겨져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별장도 있고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이 여름 휴가 때 즐겨 찾는 곳이라 한다. 이곳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의 외가 동네라서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간다. 그의 어머니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니 놀라운 예술적 감수성이 전해져 4살 때부터 신동이란 말을 들을 만큼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찰츠부르크 도시를 크게 발전시킨 주인공인 가톨릭 주교 (17세기 초 디트리히 대주교)의 믿기지 않는 로맨스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성직자이면서도 평민의 딸인 살로메 알트라와 열애에 빠져 둘 사이에 15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다. 결국 교황청과 시민들의 냉대를 받아 호휀 찰츠부르크 성의 요새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고 처자들은 모두 국외로 추방 당했다. 자신의 명예와 신앙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스캔들에 싸여 마리벨 궁전에서 세속적 행복을 누릴 만큼 놀라운 사랑의 소유자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마리벨 정원의 ’마리벨‘은 ’아름다운‘의 뜻을 지닌 말로 그릇된 주교의 스캔들을 지워 없애기 위해 이름마저 바꾸어 버렸다. 성당과 수녀원 중심의 도시인 찰츠부르크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이루어져 도시 전체가 문화재인 듯하다. 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상가 위층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모차르트 생가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서 그의 여러 가지 전시물을 보지 못해 서운했지만 음악의 최고봉이 살았던 현장ㅇ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그가 상가마다 모차르트 초콜릿 등 온갖 기념품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게 하는 이 지역의 은인임을 실감나게 한다. 1920년부터 그를 기념하여 찰츠부르크 음악제가 해마다 여름철에 열린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더불어 세계적 명지휘자, 폰 카라안(1908-1989)도 이곳 출신으로 이곳 음악제 참석하여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음악과 더불어 한 생애를 아름답게 마감한 게 아니랴. 17 *체코 매시간 울린다는 천문시계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춘다. 드디어 우중충한 구 시청 건물의 종탑이 침묵을 깨고 뻐꾸기 시계처럼 작은 창문이 열리며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가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쩌면 너무 세상살이에 빠져 살지 말고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경건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닐까. 아주 짤막한 순간의 종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까를교 다리는 부행자들의 전용도로인 듯 노점상, 길거리의 화가들과 악사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다리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엔 유람선이 오가고 하얀 고니떼가 사람들을 겁내지 않고 가까이서 한가롭게 헤엄쳐 다닌다. 도심에서 이런 고니 떼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조금 낯설게 여겨진다. 이곳 프라하 출신의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변신에 나오는 소설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 보니 놀랍게도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는. 작가는 우울한 잿빛, 고성의 도시에서 절망감을 느끼며 속물로 살아가는 인간보다 벌레로 변신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는지 모른다. 18 *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입구에 가로로 크게 씌어진 독일어 간판 ’ ARBEIT MAHT FREI(일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은 허울 좋은 속임수에 불과했고 한 번 들어 가면 살아 나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2차 대전중 이곳 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유대인(400만)뿐만 아니라 슬라브 민족(2000만)과 폴란드 국민(600만), 집시족(51만), 여호와의 증인, 그 밖에 범죄자와 동성애자, 반나치범 등 약 5천만 명에 이른다. 역사의 죄인인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고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부친은 세관원인데 부자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성적이고 공부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 비엔나에 있는 조형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두 번씩이나 시험에 실패했다. 그가 오스트리아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여 화가가 됐거나 법정에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이런 엄청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비극은 역사에서 지워졌으리라. 한 수감동 막사의 입구에 쓰인 글귀가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선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그것에 얽매여 살게 되리라. 1억 5천 만 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깊은 바닷속이던 이곳이 육지로 변하여 놀라운 암염 광산으로 바뀌었다. 희끗희끗한 소금 결정체가 바위에 묻어 잇어 손가락으로 만져 혀 끝에 대어 보니 과연 짭쪼롬한 맛이 난다. 갱도 안에서 말들을 키우며 그들을 이용해 지하수를 퍼올리거나 채취한 소금을 지상으로 옮기는 과학적 작업을 펼쳤던 지혜가 놀라웠다. 여기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그 당시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졌고 아들 대까지 세습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단순히 소금을 캐는 노동자로서가 아니고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기도 했다. 광산의 여러 테마 방 중 바이마르 방은 소금물 연못으로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쇼팽의 피아노 이별곡이 흘러 나와 감상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제일 신심이 깊은 폴란드는 가톨릭 국가로서 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배출하였다. 그 때 당시의 갱도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아침 인사도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는 대신에 ‘신께 영광을 돌립시다’라고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했다. 19 * 헝가리 도나우 강을 끼고 양쪽으로 발달한 두 도시의 이름이 합하여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 지역은 강의 오른 쪽으로 높은 산자락에 자리하여 부유층이 많은 곳으로 우리나라의 강남과 비슷하다면 강의 왼쪽은 페스트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강북과 비슷하여 상업지구로 알려졌다. 부다 언덕에 자리한 어부의 요새와 마챠시 성당보다 나는 주택가 뒤편에 있는 조용한 산책로가 더 마음에 이끌렸다. 나는 전망 좋은 담장에 기대어 도나우 강이 흐르는 시내 쪽을 바라보며 서녘으로 기우는 해를 그윽히 바라본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멋진 다리는 150년이나 된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며 건축 공법도 사슬로 이어져 특이하게 보인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기에 일부러 다리 위를 중간까지 걸어 본다. 결혼 30주년에 회갑을 맞은 나는 아내와 함께 유서 깊은 다리를 손잡고 거닐며 인생의 동반자로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감회